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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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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61회 수상자

예술상 박정자 / 연극배우 연극배우로서 한국 연극의 발전에 헌신

  수상자 박정자 선생은 이화여대 재학 당시이던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했고, 이듬해 ‘동아방송’ 성우로 활동하며 목소리 연기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 1966년 연출가 김정옥과 무대미술가 이병복이 창단한 ‘극단 자유’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1971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등의 연극에서 독특한 작품 해석과 폭넓은 연기를 선보였으며 극 중 인물을 재창조하는 독보적인 연극배우로 자리매김하였다.

  1986년 공연한 「위기의 여자」는 중년여성이 가정 문제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확립하는 모델 제시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성 연극 시대의 신호탄이 되었다. 중년여성의 내면에 다가온 위기를 실을 뜨듯 하나하나 엮어가는 심리 동작은 관객에게 감동과 상상력을 던져주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91년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서 다른 목소리 다른 어조 다른 움직임으로 엄마 역할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그만의 연기 내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1997년 일본에서 공연된 「그 여자 억척어멈」으로는 당시 국내 무대에서 토착화된 연극양식으로 각광받고 있던 '여성 모노드라마'가 변방을 탈피하여 세계수준에 도달했음을 세상에 알렸다.

  천생 배우인 박정자의 연기 세계는 극과 극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때로는 분출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야생마처럼 때로는 석양에 피어있는 하얀 박꽃처럼, 그녀의 양면성은 무대에서 빛을 발한다. 58년 동안 200여 편의 연극을 온전한 자기의 시선으로 해석하여 재창조하고 품어내면서 오직 무대만 바라보고 지내온 발걸음은, 이제 연극 연기의 한 장르가 되었다.
  자신이 속한 연극계에 대한 관심도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2005년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설립을 주도하며 12년간 이사장으로 활동하였고, 2007년부터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와 공청회를 이끌어 예술가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한 ‘예술인복지법안’ 탄생에 크게 기여하였다. 후배 연극인과 예술인을 위한 그녀의 따듯한 헌신은 예술가의 귀감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언제나 극적인 창조에 깊이 몰입하여 민족과 지역을 넘어 인류적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박정자는, 오늘도 무대 위에서 특유의 몸짓과 언어로 세상의 보편적 이치와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